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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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는 덴마크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이며, 전자기학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1820년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변에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전기와 자기 현상이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또한 알루미늄을 최초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으며, 과학 대중화 및 교육에도 힘썼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자기장의 단위인 에르스텟(Oe)과 CGS 단위계의 자기 유도 단위 외르스테드(Oe)가 명명되었으며, 덴마크의 여러 기관과 단체, 위성, 지폐 등에 그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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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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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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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777년 8월 14일 |
출생지 | 덴마크 루드쾨빙 |
사망일 | 1851년 3월 9일 |
사망지 | 덴마크 코펜하겐 |
묻힌 곳 | 아시스텐스 공동묘지, 코펜하겐 |
국적 | 덴마크 |
학력 | |
모교 | 코펜하겐 대학교 (박사) |
연구 분야 및 업적 | |
분야 | 물리학, 화학 |
알려진 업적 | 알루미늄 발견 외르스테드 법칙 사고 실험 외르스테드 |
가족 관계 | |
친척 | 안데르스 산되 외르스테드 (형제) |
수상 | |
훈장 | 데인브로 훈장 코플리 메달 (1820년) 왕립 학회 회원 (1821년) 에든버러 왕립 학회 회원 (1821년) 푸르 르 메리트 훈장 (1842년) |
경력 | |
직장 | 코펜하겐 대학교 덴마크 공과대학교 (설립자)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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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및 연구
외르스테드는 1777년 덴마크 랑엘란섬의 루드쾨빙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정규 교육 대신 주로 독학으로 공부했다.[6][28] 1793년 동생 안데르스와 함께 코펜하겐 대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여 철학, 천문학, 물리학, 수학, 화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1799년 칸트 철학에 기반한 논문 "자연 형이상학의 건축술"(''The Architectonicks of Natural Metaphysics'')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00년 알레산드로 볼타의 볼타 전지 발명 소식은 외르스테드가 전기의 본질을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801년부터 3년간 장학금 지원으로 유럽을 여행하며 베를린, 파리 등지의 과학자들과 교류했다.[7] 특히 독일에서 만난 물리학자 요한 빌헬름 리터는 전기와 자기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자연의 통일성을 믿었던 외르스테드의 생각과 일치하여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6][8] 이 만남을 계기로 외르스테드는 물리학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유럽 여행 후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외르스테드는 1806년 코펜하겐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전류 작용과 음향학 분야 연구에 집중했다. 그의 주도하에 대학에는 새로운 물리학 및 화학 실험실이 설립되었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또한 1806년 가을에는 윌리엄 크리스토퍼 자이세를 조교로 받아들여 젊은 화학자를 지도하기도 했다.
외르스테드는 연구 활동 외에도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는데, 1812년경 라틴-독일어 용어 Gedankenexperimentdeu와 1820년 독일어 용어 Gedankenversuchdeu를 사용하여 사고 실험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사용한 최초의 현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9]
그의 초기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다. 1819년에는 후추에서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피페린을 최초로 분리하고 명명했으며,[10] 1822년에는 액체의 압축성을 측정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압력계를 설계했다.[11] 또한 1824년에는 염화 알루미늄을 칼륨 아말감과 반응시켜 금속 알루미늄을 분리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지만, 순수한 형태는 아니었다.[18][19] 이 연구는 이후 프리드리히 뵐러에게 이어져 알루미늄 연구 발전에 기여했다.[21]
2. 1. 초기 교육

덴마크의 랑엘란섬 루드쾨빙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약국 일을 도우면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6][28]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동생 안데르스와 함께 어린 시절을 가족 친구의 집에서 보내며 교육받았다. 정규 학교 교육 대신, 그곳에서 성경을 통해 독일어를 배우고 라틴어와 수학 기초를 다졌으며, 형제는 집에서 독학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식에 대한 갈증이 깊었다.
1793년, 형제는 코펜하겐 대학교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갔고, 둘 다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하여 입학했다. 대학 시절 외르스테드는 철학, 특히 임마누엘 칸트의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천문학, 물리학, 수학, 화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를 공부했다. 1796년에는 물리학과 미학 관련 논문으로 우등상을 받았고, 1797년 화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799년, 칸트 철학에 기반한 논문 "자연 형이상학의 건축술"(''The Architectonicks of Natural Metaphysics'')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 2. 대학교 시절
외르스테드와 그의 동생 안데르스는 1793년 코펜하겐 대학교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갔다. 두 형제는 시험을 매우 뛰어난 성적으로 통과하였고,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6] 외르스테드는 대학 시절 철학, 특히 임마누엘 칸트의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나, 동시에 천문학, 물리학, 수학, 화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를 공부했다.
1796년에는 물리학과 미학 분야에서 제출한 논문으로 우등상을 받았으며, 1797년에는 화학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칸트 철학이 자연과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검토하는 연구에 매진하여, 1799년 The Architectonicks of Natural Metaphysics|자연 형이상학의 건축술영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 3. 유럽 유학
1801년, 외르스테드는 장학금과 공적 지원을 받아 3년간 유럽을 여행할 기회를 얻었다.[7] 그는 베를린과 파리를 포함한 유럽 대륙의 여러 과학 중심지를 방문했다.[7]독일에서 외르스테드는 물리학자 요한 빌헬름 리터를 만났다.[6][8] 리터는 전기와 자기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칸트 철학에 기반하여 자연의 통일성을 믿었던 외르스테드에게 깊은 공감을 주었다.[6][8] 그는 자연 현상들 사이에 규칙과 깊은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리터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리터와의 대화는 외르스테드가 물리학 연구에 더욱 전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 알레산드로 볼타의 볼타 전지 발명 이후 활발히 이루어지던 전기와 화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을 접하며 공부했다.
3. 전자기학
1820년,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에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12] 이는 나침반 바늘이 전류가 흐르는 도선 근처에서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확인되었다. 이 발견은 이전까지 별개로 여겨졌던 전기와 자기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실험적으로 처음 증명한 것으로, 전자기학 발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외르스테드는 추가 연구를 통해 전류가 도선 주위에 원형의 자기장을 형성한다는 것을 밝혀냈으며,[2][13] 이 결과는 앙드레-마리 앙페르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의 후속 연구를 촉발시키는 등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1. 외르스테드의 실험
1820년 4월 21일, 외르스테드는 저녁 실험 강의 도중 볼타전지의 양극과 음극을 연결한 전선에 강한 전류를 흘려보낼 때, 근처에 있던 나침반 바늘이 북쪽이 아닌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현상을 목격했다.[29] 당시 강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외르스테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상에 당황한 듯 보였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전선 옆에 나란히 놓인 나침반 바늘이 전선과 수직인 동서 방향으로 90도 회전하여 멈추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전선에 흐르는 전류의 방향을 바꾸자 나침반 바늘은 즉시 180도 회전했다. 이는 나침반 바늘에 작용하는 힘이 단순한 인력이나 척력(정전기력이나 만유인력 등)이 아니라, 전류로부터 발생한 돌림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 현상은 자기장과 전류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증명하는 최초의 증거였으며,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자기를 발생시킨다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
흔히 외르스테드가 강연 중 우연히 이 발견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이미 1818년부터 전기와 자기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나, 실험 결과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13][12] 처음에는 자기 효과가 빛이나 열처럼 전류가 흐르는 전선의 모든 면에서 방사된다고 해석했다.[2][13]
외르스테드는 발견 직후에는 현상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시하거나 수학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3개월 후 더 집중적인 조사를 시작했고, 곧 전선을 통해 흐르는 전류가 그 주위에 원형의 자기장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2][13] 이 발견은 과학계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런던 왕립 학회는 1820년 외르스테드에게 코플리 메달을 수여했고, 프랑스 학술원은 그에게 3000FRF을 수여했다.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과학계 전반에 걸쳐 전자기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랑스 물리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가 전류가 흐르는 도체 사이의 자기력을 나타내는 수학 공식을 개발하는 데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외르스테드의 연구는 에너지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통일된 개념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되었다. 외르스테드 효과는 이후 전기 전신 기술의 토대가 되어 통신 혁명을 가져왔다.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이 가능성을 즉시 제안했고, 앙페르는 같은 해에 이를 기반으로 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12]
한편, 전류의 자기 작용 발견과 관련하여 이탈리아의 잔 도메니코 로마뇨시가 1802년에 유사한 현상을 발견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이탈리아 신문에 보도된 로마뇨시의 실험은 전류가 아닌, 볼타 전지에서 축적한 정전기가 나침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31] 그러나 로마뇨시는 과학계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의 발견은 당시 과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간과되었다.[32]
1822년, 외르스테드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3. 2. 전자기학 발전 기여
1820년 4월 21일, 외르스테드는 저녁 실험 강의 도중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볼타전지에 연결된 전선에 강한 전류를 흘려보내자, 근처에 있던 나침반 바늘이 북쪽이 아닌, 전선 방향과 수직인 동서 방향을 가리키며 90도 회전하는 것을 목격했다.[29] 전류의 방향을 바꾸자 바늘은 즉시 180도 회전했다. 이 현상은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에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것, 즉 전기와 자기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였다.
흔히 이 발견이 강의 중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외르스테드는 1818년부터 전기와 자기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13][12] [30] 그는 처음에는 자기 효과가 전류가 흐르는 전선의 모든 면에서 빛이나 열처럼 방사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3개월 뒤 더 집중적인 조사를 통해 전류가 전선을 통과할 때 원형의 자기장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2][13]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단순한 인력이나 척력이 아닌 돌림힘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전기력이나 만유인력과는 다른 새로운 힘의 형태를 보여주었으며, 과학계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외르스테드 자신은 이 현상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시하거나 수학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발견은 전자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문을 열었으며, 에너지 개념의 통일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 발견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특히 프랑스 물리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는 외르스테드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전류가 흐르는 도체 사이에 작용하는 자기력을 설명하는 수학 공식을 개발했다. 또한 아라고, 패러데이, 베버 등 여러 과학자들이 활발한 후속 연구를 통해 전자기학의 기초를 다졌다. 외르스테드의 업적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1820년 런던 왕립 학회로부터 코플리 메달을 수상했고, 프랑스 학술원으로부터 3000FRF의 상금을 받았다. 1822년에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과학 이론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류의 자기 효과, 즉 외르스테드 효과는 전기 전신의 발명으로 이어져 통신 분야에 혁명을 가져왔다.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외르스테드의 발견 직후 전신의 가능성을 제안했으며, 앙페르는 같은 해에 이를 구체화하는 논문을 발표했다.[12]
한편, 1802년 이탈리아의 잔 도메니코 로마뇨시가 외르스테드보다 앞서 유사한 현상을 발견했다는 주장이 있다. 로마뇨시는 볼타 전지에서 발생한 정전기가 나침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이탈리아 신문에 발표했으나,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고 그의 보고는 당시 과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31][32]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인 에르스텟(Oe)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졌다.
4. 화학 분야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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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알루미늄 분리
외르스테드는 알루미늄을 화학적으로 분리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1825년, 그는 최초로 염화알루미늄 제조에 성공했으며, 이 발견은 후에 F.뵐러가 금속 알루미늄을 제조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같은 해 외르스테드는 알루미나에서 합성한 염화물을 칼륨아말감으로 환원시키는 방법을 통해 알루미늄을 성공적으로 분리해냈다. 그 이전에는 험프리 데이비가 알루미늄과 철의 합금을 만든 바 있다.5. 과학 대중화 및 사회 활동
외르스테드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넘어,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덴마크 사회에 과학적 사고방식을 확산시키고자 힘썼으며, 이러한 활동은 당시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과학 기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교육 기관 설립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5. 1. 코펜하겐 공과대학 설립
1829년, 외르스테드는 Den Polytekniske Læreanstalt|덴 폴리테크니세 뢰레안스탈트dan라는 학교를 창설했는데, 이 학교는 후에 덴마크 공과대학교(DTU)가 되었다.[33]6. 철학 및 문학 활동
외르스테드는 젊은 시절부터 칸트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자연 현상들 사이의 근본적인 연결, 즉 자연의 통일성을 믿는 그의 과학적 사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은 그가 전기와 자기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결국 전자기학의 중요한 발견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재능도 뛰어나 시인이자 작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동시대의 유명 문인인 시인 욀렌 슐레게르 및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과도 친밀하게 교류하며 지적인 영감을 나누었다.[36] 그의 문학 작품으로는 동료 과학자 에티엥 가스파르 로베르의 열기구 비행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집 《Luftskibet|비행선dan》(1836)이 있으며,[36][25] 말년에는 그의 철학적 사유를 집대성한 《Der Geist in der Natur|자연 속의 영혼deu》(1850)을 출간하기도 했다.[35]
이 외에도 외르스테드는 다양한 과학 및 철학 관련 저술을 남겼다.
연도 | 원제 | 번역 제목 | 비고 |
---|---|---|---|
1807 | Betragtninger over Chemiens Historiedan | 화학의 역사에 대한 고찰 | Det Skandinaviske Litteraturselskabs Skrifter 저널 게재 |
1809 | Videnskaben om Naturens almindelige Lovedan | 자연의 일반 법칙에 관한 과학 | |
1812 | Ansicht der chemischen Naturgesetze, durch die neuern Entdeckungen gewonnendeu | 최근 발견을 통해 얻은 화학적 자연 법칙에 대한 견해 | |
1814 | Imod den store Anklagerdan | 위대한 고발자에 반대하여 | |
1820 | Experiments on the Effect of a Current of Electricity on the Magnetic Needleeng | 전류가 자기 바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 | Annals of Philosophy 게재 |
1844 | Naturlærens mechaniske Deeldan | 자연학의 역학적 부분 | |
1851 | Der mechanische Theil der Naturlehredeu | 자연학의 역학적 부분 | 1844년 저작의 독일어판 |
1920 | Correspondance de H. C. Örsted avec divers savantsfra | 외르스테드와 여러 학자들의 서신 | 사후 출판, 2권 구성 (요한스 야콥 베르셀리우스, 마이클 패러데이,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등과 교환한 서신 포함) |
1998 | Selected Scientific Works of Hans Christian Ørstedeng |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 과학 저작선 | 사후 출판된 영어 논문 모음집[26] |
6. 1. 칸트 철학의 영향
외르스테드는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철학, 특히 칸트의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과학에서 칸트 철학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했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은 외르스테드가 자연 현상들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자연에는 보편적인 규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이후 전자기학 연구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독일 여행 중 만난 요한 빌헬름 리터와의 대화를 통해 전기와 자기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6. 2. 문학 작품
외르스테드는 과학 연구 외에도 작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과 시인 욀렌 슐레게르와도 가깝게 지냈다.[36]그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는 시집 《Luftskibet|비행선da》이 있다. 이 시집은 동료 과학자이자 마술사인 에티엥 가스파르 로베르의 열기구 비행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쓴 것으로, 1836년에 출판되었다.[36][25][34]
또한 1850년에는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담은 논문집 《Der Geist in der Natur|자연 속의 영혼de》을 독일어로 출판했다. 이 책은 외르스테드가 사망한 후인 1852년에 영어로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35]
7. 후대에 미친 영향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인류 역사상 중요한 과학적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이후 과학 기술 발전과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전자기학 발견은 앙드레마리 앙페르, 패러데이 등 후대 과학자들의 연구에 영향을 주어 전자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는 현대 문명의 전기 및 통신 기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외르스테드는 연구뿐 아니라 과학 지식의 대중화와 교육에도 힘썼으며, 덴마크 공과대학교 설립 등을 통해 덴마크 과학 기술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런던 왕립학회,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 등 유럽의 주요 학술 기관의 회원으로 추대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14][3][15][16]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CGS 단위계 단위인 에르스텟(Oe)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이는 과학사에 남긴 그의 중요한 업적을 기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의 업적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과학 교육과 기술 혁신에 대한 그의 열정은 후대에 영감을 주고 있다.
7. 1. 과학적 영향
외르스테드의 전자기 발견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발견은 우리 생활과 사회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킨 전자기학이라는 광대한 과학 및 기술 영역의 문을 열었다. 그의 발견 이후, 전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앙드레마리 앙페르(전류 단위 A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라고, 패러데이, 베버 등 여러 과학자들의 뛰어난 업적을 통해 전자기학이 성립되었다. 또한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에너지 개념의 통일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화학 분야에서도 외르스테드는 중요한 기여를 했다. 1825년, 그는 최초로 염화알루미늄 제조에 성공했는데, 이는 훗날 F.뵐러가 금속 알루미늄을 분리하는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외르스테드는 자연과학의 진흥을 위해 힘썼다. 그는 코펜하겐 공과대학을 설립하고 과학 보급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지구자기관측소를 세우고, 덴마크 왕립과학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맡기도 했다. 자기장의 세기 단위인 에르스텟(Oe)은 그의 과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졌다.
7. 2. 사회적 영향
외르스테드의 전자기 현상 발견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발견은 이후 앙드레마리 앙페르, 아라고, 패러데이, 베버 등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로 이어져 전자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시켰으며, 이는 현대 사회의 전기 및 통신 기술 발전에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하여 우리 생활과 사회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그의 발견은 에너지 개념의 통일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르스테드는 단순히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학 지식의 보급과 교육에도 큰 힘을 쏟았다. 1824년에는 과학 대중화를 목표로 자연 과학 보급 협회(Selskabet for Naturlærens Udbredelseda, SNU)를 설립했으며,[17] 1829년에는 덴마크 공과대학교(DTU)의 전신인 고등 기술 대학(Den Polytekniske Læreanstaltda)을 설립하여 덴마크의 공학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17] 그는 또한 덴마크 기상 연구소와 덴마크 특허 및 상표청의 모태가 된 기관들의 설립자이기도 했으며,[17] 지구자기관측소를 설립하고 덴마크 왕립과학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역임하는 등 덴마크 과학계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외르스테드는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1821년 에든버러 왕립학회의 회원[14] 및 런던 왕립학회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3] 이후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1822년),[3] 미국 철학회(1829년),[15]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1849년) 등[16] 여러 해외 학술 기관의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인 에르스텟(Oe)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어 그의 과학적 공헌을 기리고 있다.
7. 3. 기념
CGS 단위계에서 자기장 세기의 단위인 에르스텟(Oe)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졌다. 1 Oe는 약 79.577 A/m에 해당한다.
외르스테드를 기념하는 여러 장소와 시설이 있다.
- '''단위 및 상:'''
- * CGS 단위계의 자기장 세기 단위인 에르스텟(Oe)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 * 그의 이름을 딴 상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미국 물리 교사 협회(AAPT)가 물리 교육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외르스테드 메달과, 외르스테드 자신이 설립한 '자연 과학 보급 협회'(Selskabet for Naturlærens Udbredelseda)가 덴마크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H. C. 외르스테드 메달이 있다.
- '''장소 및 건물:'''
- * 코펜하겐의 외르스테드 공원(Ørsted Park)은 1879년 외르스테드와 그의 형제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어졌다. 공원에는 1880년에 세워진 그의 동상이 있다.
- * 프레데릭스베르의 H. C. Ørsteds Vejda 거리와 갈텐의 H. C. Ørsteds Alléda 거리도 그의 이름을 땄다.
- * 코펜하겐 대학교 노르 캠퍼스에 있는 화학과와 수학과 건물은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 연구소(H.C. Ørsted Institute)로 명명되었다.
- * 오덴세에는 그의 이름을 딴 H. C. Ørsted Kollegietda 기숙사가 있다.
- * 그가 살면서 일했던 코펜하겐의 Studiestrædeda 건물 정문 위에는 기념 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 * 188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자연사 박물관에도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 '''위성 및 기업:'''
- * 1999년에 발사된 덴마크 최초의 인공위성은 외르스테드로 명명되었다.
- * 덴마크의 주요 에너지 기업이었던 덴마크 석유 가스 회사(DONG Energy)는 화석 연료 중심에서 해상 풍력 발전소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면서, 이를 알리기 위해 사명을 외르스테드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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